• CEO 인사말
  • 50주년 역사관
  • 금융 박물관
  • CEO 인사말
  • 50주년 역사관
    • 사진으로 보는 50년
      • -연혁
      • -역대 은행장
      • -유니폼(근무복)
    • 상징으로 보는 50년
      • -광주은행가
      • -CI
    • 이야기로 보는 50년
      • -BOOKS
      • -50년사 편찬 인터뷰
      • -기념 행사
  • 금융박물관
    • 소개
      • -이용 안내
      • -오시는 길
      • -자료 기증
    • 알림
      • -공지/새 소식
    • 전시
      • -상설 전시
      • -특별 전시
    • 금융교육
      • -교육 소개
      • -교육 신청
50년사 편찬 인터뷰

손성남 전 전무이사

김정태 전 부장

박웅 전 상무
1 2 3 4 5 6 7 마지막으로
손성남 전 전무이사

“특히 2년여에 걸친 극심한 한해로 인해 주변에서 

단돈 100만원도 구하기 어려웠습니다. 

자본금을 마련하기 위해 

개인적으로 부동산을 처분하였지요.”  

김정태 전 부장

“상황은 어렵고 개점은 얼마 남지 않아서 은행의 전표, 

장표는 물론 규정을 만드는 등 업무가 많았습니다. 

개점 전날인 11월 19일에는 꼬박 

날을 새야 했을 정도니까요.”(1968년 창립)


박웅 전 상무

“직원들이 부당한 처우를 받고 있었는데 

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더라구요. 

참 어려웠던 시대에 노조 창립이라니 

지금 다시 하라면 할 수 있을까 싶어요.”

(1975년 노조설립) 


양회천 전 은행장 직무대행

“당시 시중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려면 며칠이 걸렸지만 

광주은행에서는 신속한 의사결정으로 취급이 

가능했었죠.”(초창기 대출취급) 


홍명재 전 소장

“사무개선부장으로 근무했을 당시 전 지점에 타이핑기기를

지급했었죠. 이것을 먼저 사용해야 전산판에 

익숙해질 테니까요. 하지만 지점에서는 

타이핑기기만 주면 어쩌라는 말이냐며 

타이퍼라이터를 달라고 했었죠. 

쉽지 않은 과정이었어요.”(1983년 전산화) 


남헌일 전 은행장 직무대행

“뱅크런 사태가 일어났을 때 도움을 주신 분들이 

많았죠. 광주은행을 위해 애써주신 그런 분들은 

절대 잊어서는 안됩니다.”(1999년 뱅크런) 


배철수 전 본부장

“근속 20년을 기념하여 은행에서 준 

은쟁반(감사패) 중앙에 있는 금장식이랑 

아이들 돌반지까지 가져다가 동참했죠.”

(1998년 금모으기 운동 당시)

임철목 전 부장

“저야 은행 간부였으니까 노조원이 될 수 없었지만 

그렇다고 노조에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었죠. 

그래서 재직증명서에 그냥 도장 찍어줬어요.”

(1975년 노조설립) 

김형호 전 지점장

“노동조합 창립에 며칠을 준비했지만 예상치 못한 

상황에 급하게 다른 장소를 찾느라 애먹었어요. 

임시추진위원회 막내인 제가 여기저기

뛰어다녀야했죠.”(1975년 노조설립) 

정대영 전 상무

“개발기간에는 정말 직원들이 많이 힘들어했죠. 

일년에 이틀정도 밖에 쉬지 못했으니까요. 

젊은 직원들의 패기로 견뎌냈죠.”

(1994년 다운사이징 전산시스템 개발)

김선재 전 부행장

“전산화가 되기 전 결산을 할 때면 수일을 날을 

새야했어요. 지방에 있는 지점 담당자들은 

버스를 타고 올라와서 수치가 맞지 않으면

다시 되돌려보내야 했었죠. 그때는 어떻게

그렇게 일을 했는지 모르겠어요.” 

홍영철 전 본부장

“1987년이었던 것 같네요. 

수기(手記)로 연말 결산 작업을 하면 보름이 걸리는데 

그 해에 처음으로 하나SP프로그램을 이용하니 

닷새 만에 끝나더라구요.”(1987년 전산화 과정) 

김영순 전 부장(현 광은동우회 부회장)

“그때는 과장도 부장같이 책임감을 갖고 일했어요.

은행이 위기에 처했는데 지위고하를 불문하고 

열심히 일하던 시기였죠.”(1990년대 후반)




이형석 전 노조위원장

“정말 가슴 아픈 것은 

대출 받아 샀던 주식도 휴지조각이 되어버리고 

거기에다 구조조정까지 당해버린 직원들이 다수 있었다는 점이에요. 

지금 생각해도 정말 가슴 아파요.”

(1998년 1,000억원 유상증자)

강충신 전 부장

“당시 우리은행 강당에서 진행 했었어요. 

발표하는 모습을 뒤에서 봤는데 

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구요.”

(2002년 4월 A.T,Kearney 기능재편보고서 발표)

김경태 전 부행장

“90년대 송병순 은행장 시기 학습된 DNA를 통해 

평균적인 직원들의 수준이 타 은행 직원들에 비교하여 앞섰어요. 

우리금융지주에 포함되어서도 IT분야 등은 우리가 앞서있었죠. 

여러분들은 자긍심을 갖고 다녀도 돼요.”

(우리금융지주 편입 후)

김인식 전 부행장

“액면가 이하로 신주를 발행해야 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어요. 

예금 금리도 보전해주고, 대출 금리도 보조해주자는 의견이 나왔죠. 

성공적인 유상증자로 다른 금융기관들의 부러움을 샀어요.”

(1998년 1,000억원 유상증자)

윤석구 전 부장

“1994년에 서무원부터 임원들까지 전 직원이 2박3일

일정으로 연수를 갔던 ‘동경180’은 선진국인 일본의 

직원들이 고객을 어떻게 응대하는지 서비스 마인드를 

느낄 수 있도록 마련된 프로그램이었죠.”

(1994년 동경180)

 
김성현 전 부장

“광은경영경제연구소는 경영진의 의사결정 과정에 

영향을 주기도 했어요. 새로운 정책방안이나 

투자 등을 실행하기 전 검토하는 역할도 

많이 했죠.”(1994년) 

Previous Next
  • 이용약관
  • 개인정보처리방침

주소: 광주광역시 동구 제봉로225(대인동) 광주은행 본점 2층 / Tel: 062.239.5065

Copyright 2018 by kwangju bank All rights Reserved.